20260325 오늘의 묵상
우성익
2026-03-24
추천 0
댓글 0
조회 28
《오늘의 묵상 / 요한복음 16장 1절~15절》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Q.T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정말 죽다 살아났다”, “내 인생에 다시는 출산이란 없다”라고 말이죠. 산고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그런 결심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은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를 향해 배냇짓을 하며 환하게 웃는 그 찰나의 순간, 며칠 밤을 지새우게 했던 그 끔찍한 진통의 기억이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후에는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잠시 후에는 나를 보리라” 하셨을 때, 제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직업과 가정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어부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세리로서의 자리를 버리고,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는 언젠가 더 나은 삶을 안겨주겠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곧 떠나신다고 하니, 그들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미래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을 들어 지금 겪는 죽음 같은 이별의 고통은 ‘대체 불가능한 환희’를 경험하게 될 진통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산고를 잊듯,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뵙는 순간 제자들의 근심은 영원한 기쁨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번이 끝이다” 싶을 정도로 버거운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산고의 고통을 치르는 산모 옆에서 손을 잡고 위로하는 산파처럼 우리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라,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격려하시며 희망을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고통을 잊게만드는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자신의 부족함에 한숨 짓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 중앙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0개